제1호 수문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시리즈는 독자에게 친절한 법이 없다. 매그레 반장이 어디서 단서를 찾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법이 없다.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의 전체적인 개요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독자 입장에서 마지막에 다다르기 전에 사건 전체를 알아차릴 가능성도 거의 없다. 매그레가 맡은 사건은 오랜 세월 묵혀둔 감정이 쏟아져 나온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당장 눈앞에 보이는 사건만 봐서는 사건의 실상을 밝혀낼 수 없다. 그래서 가해자지만 동정심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장 수상한 인물이 누군지 전혀 짐작 못할 정도는 아니다. 매그레가 주시하는 인물, 그가 쫓아다니는 인물을 같이 뒤쫓다보면 어느새 마지막에 도달해있다. 『제1호 수문(열린책들)』에서 매그레 반장은 누가 봐도 피해자로 보이는 인물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에밀 뒤크로는 등에 칼침을 맞고 물에 빠졌다가 살아났다. 술 취한 가생 노인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지 않았다면 뒤크로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매그레는 사건이 발생한 지 이틀 후 뒤크로를 만났다. 뒤크로는 매그레에게 경찰이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붙잡는다면 2만 프랑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처음 매그레 반장을 만났을 때 뒤크로는 당당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거리낌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이니 말이다. 하지만 매그레는 뒤크로에게 물었다. “수사 의뢰를 취하하지 않을 겁니까? 정말로 내가 범인을 잡기를 원합니까?”(p.36) 매그레는 벌써 뒤크로 사건에 숨겨진 진실이 있음을 알았던 것일까 우리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읍시다. 우선 누가 죄인이라고 의심하는지부터 말해 주시오.무엇에 대한 죄인 말입니까? p.139 『제1호 수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호하다. 우선 매그레가 뒤크로를 공격한 사람을 붙잡기 위해 수사를 하고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매그레는 수로, 수문, 배들을 둘러보고 피해자 뒤크로와 대화를 나눌 뿐이다. 매그레가 뒤크로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을수록 뒤크로가 제일 의심스럽지만 그에게서 수상한 점은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뒤크로라는 남자의 신상에 위험한 일이 발생할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분위기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매그레가 뒤크로를 보호하고 있는 듯 보이기까지 한다. 뒤크로에게 위협이 되는 인물은 가생 노인이다. 두 사람 사이에는 묵은 감정이 있다. 하지만 가생 노인이 뒤크로의 등에 칼침을 놓은 것은 아니다. 결국 노인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매그레와 함께 경찰청으로 향하는 인물은 에밀 뒤크로가 되었다. 그는 생각했다. <내가 1~2분 만에 찾아내지 못한다면, 내게도 책임이 있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질 거야!> 왜냐하면 표면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 다른 것이, 또 다른 드라마가 숨어 있었다. 한 사람은 단지 말을 이어 가기 위해 말을 했고, 또 한 사람은 듣고 있지 않았다. p.190 『제1호 수문』에 등장하는 뒤크로는 피곤에 지친 남자다. 곧 경찰청을 떠나 은퇴를 앞둔 매그레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남자 뒤크로의 만남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매그레는 삶에 지쳐버린 남자를 알아보았고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매그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 세계 독자를 열광케 한 형사 매그레 반장이 온다!
대문호 헤밍웨이가 조르주 심농에게 보내는 찬사. 만약 아프리카 우림에서 비 때문에 꼼짝 못하게 되었다면, 심농을 읽는 것보다 더 좋은 대처법은 없다. 그와 함께라면 난 비가 얼마나 오래 오든 상관 안 할 것이다. 이방인 의 알베르 카뮈는 심농의 쿠데르크 씨의 미망인 이라는 작품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파이프 담배를 문 채 쉼 없이 맥주를 마시는 거구의 사나이, 추리 소설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주인공 중 하나인 매그레 반장. 매그레는 전 세계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5억 권 이상의 작품이 팔려 나갔으며 60편 이상의 극장 영화와 3백 편 이상의 텔레비전 영화가 만들어진 벨기에 작가 조르주 심농의 가장 유명한 주인공이다.
눈에 띄는 외양과 달리 그는 비범한 두뇌를 지니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우리에게 친숙한 탐정들에 비하면 그의 수사는 평범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여느 탐정들처럼 천재적 추리력으로 앉은 자리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대신, 그는 범행의 현장 속으로, 인물의 심리 속으로 직접 뛰어든다. 서민 출신의 그는 그 누구보다 그들의 삶을 이해하며, 약자의 처지에서 생각하려 한다. 타인의 처지로 들어가 공감하는 특유의 능력이 바로 그가 남다르게 사건을 해결하게 해주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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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호 수문 연보
조르주 심농 연보